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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

by POETIKA 2020. 5. 19.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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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승환

 

1

 

 

나는 언제 죽는 것이 적당한가

 

 

2

 

 

시멘트 바닥을 곡괭이로 내려친다

시멘트 바닥을 곡괭이로 내려친다

 

시멘트 바닥을 곡괭이로 긁는다

시멘트 바닥을 곡괭이로 긁는다

 

곡괭이 곡괭이 곡괭이

 

양날이 닳을 때까지

자루가 남을 때까지

 

자루가 손에 남는다

 

버릴 것인가 긁을 것인가

 

주먹이 손에 남는다

 

멈출 것인가 긁을 것인가

 

나는 바닥에 주먹을 댄다

 

 

3

 

형광등 현관문 비상구 아파트 경비실 가로등 건널목 신호등 자동차 클랙슨 클랙슨 타이어 타이어 사이렌 중앙선 지팡이 휠체어 유리창 그림자

나는 말하지 않는다

 

 

4

 

 

부서진 보도블록의 밤

 

나는 건물의 벽들마다 어둠이 떨리는 것을 본다

 

나는 길고양이 울음소리를 마신다

 

나는 검은 피가 흐르는 공기를 만진다

 

나는 하수구로 흘러 들어가는 가로등 불빛을 맡는다

 

나는 흩어진 유리 조각 흩날리는 원피스 여인 머리카락 향기를 듣는다

본다 마신다 만진다 맡는다 듣는다

믿는다

 

나는

 

만약

 

 

5

 

 

밤의 계엄령

 

총탄의 밤

불타는 방송국의 밤

 

나는 그 여자가 바라본 눈동자의 밤을 기억한다

 

나는 살아있다

 

어쩌면

 

 

6

 

 

 

나는 걷는다

 

나는 긷는다

 

나는 딛는다

 

나는 믿는다

 

나는 싣는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관의 덮개

 

뒷면이 있다

 

 

7

 

 

밤은 스스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가까이 있다

 

모든 것이 있다

 

 

 

시집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문학동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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