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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2019년 08월호》양순모, 「당신에서 당신으로」

리뷰

by POETIKA 2019. 9. 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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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 문학동네, 2019

 

양순모

 

어느 누구도 감히 익사자를 뒤집어
그 몸에 가득 찬 물을 토해 내게 하지 않는다.1)

  1)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 문학동네, 2018, 115쪽.

 

    시인이라면, 누구보다 언어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일 것 같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언어의 장애를 겪으며, 언어 사용의 어떤 편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이라 가정한다면, 글쎄, 아무래도 조금은 무리한 가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겠지만, '장애'의 의미가 "하나의 사회적 정체성으로서" '생성'되어 간다는 장애학(disability studies) 내 급진적 상대주의 입장을 고려하자면,2)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시인의 '손상'에 주목하여 그러한 손상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 줄 수 있으며,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지 구체화할 필요를 느낀다.
    "낱말들을 선택하고,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의 문법 체계에 준하여 그것들을 문장으로 조합해"(81쪽) 내어야 하는 일상의 언어생활 가운데. 로만 야콥슨의 도식3)은 낱말의 '선택' 및 문장으로의 '조합'이라는 두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를 두고 각각 '유사성 장애'와 '인접성 장애'로 규정하고 있다. 예컨대 유사성 장애의 경우, 포크를 두고 이를 포크라 대답하지 못하고, (공간적으로 인접한) 나이프나 스푼으로 대답할 수 있을 뿐이며, 인접성 장애의 경우, 문장 구성 능력이 상실되어 언어생활이 낱말 뭉치의 비문법적 나열 정도로 퇴화하는 경우를 말한다. 선택과 조합이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구분되는 두 언어 장애는 각각 손상되지 않은 기능에 기대어, 유사성 장애는 인접성에 의존하는 '환유'적 언어생활을, 인접성 장애는 유사성에 의존하는 '은유'적 언어생활을 꾸려 나간다.

  2)  베네딕테 잉스타·수잔 레이놀스 휘테 엮음, 김도현 옮김,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 장애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 그린비, 2011, 23쪽.
  3)  로만 야콥슨·모리스 할레, 「언어의 두 측면과 실어증의 두 유형」, 『언어의 토대』, 문학과지성사, 2009. 유사성 및 인접성 장애와 관련한 설명 인용은 모두 위의 책에서 인용(쪽수로만 표기).

 

    4

 

    자동차 가로수 아스팔트 터널 헤드라이트 중앙선 어둠 신호등 다리 타워 빌딩 자동문 로비 기둥 복도 계단 엘리베이터 버튼 벽 비상구 비상등 소화전 소화기 경보기 천장 환풍기 철문 손잡이 열쇠 책장 책상 스탠드 컴퓨터 서류 서류함

 

    의자

 

    나는 아무 이름도 아니다

 

    5

 

    갑자기 나를 욕조라 부른다

 

    욕조

 

    욕조

 

    나는 씻는다

 

       ㅛ ㄱ ㅈ ㅗ
    ㅗ    ㅛ ㄱ ㅈ
    ㅈ ㅗ    ㅛ ㄱ
    ㄱ ㅈ ㅗ    ㅛ
    ㅛ ㄱ ㅈ ㅗ

 

    나는 짓는다

 

– 「있다」 부분

 

    야콥슨의 설명에 따르면, "낱말을 어간과 어미로 분해하는 능력의 상실"(102쪽)을 특징으로 하는 인접성 장애의 경우 "욕조"를 음소 단위로 나누는 위의 실험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보다는 인용한 시의 첫 연과 둘째 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 "어떤 의미론적 범주화도 유사성보다는 차라리 시공간적 인접성에 의해 인도 되"(97쪽)는 유사성 장애의 특징을 시인의 시편이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더불어 "핵심어"를 잃고 "대명사나 대부사 그리고 접속사나 보조사처럼 문맥의 구성에만 사용되는 어휘들"(90쪽)로 이루어진 여러 시편들을 통해(「이화장」, 「심우장」, 「어떤 목소리」) 시집의 목소리가 유사성 장애에 기인한 환유적 글쓰기를 수행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한다.
    그렇다면 시집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의 목소리는 어떤 이유로 유사성 장애와 더불어 환유적 글쓰기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장애의 원인(cause)4)에 대해 묻는 행위는 일견 조금은 "어리석은 질문"이 아닐 수 없겠지만, 장애와 관련한 문화인류학의 관점을 빌리면5), 이와 같은 원인 탐구를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공동체 내에서의 관계를 복원"6)하는 한 방법을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4)  "그녀는 (아이가) 차에 치였다는 것이 (죽음의) 이유임을 분명히 알지만, 그것으로 모든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집요한 확신은 원인을 찾으려는 몸짓으로 이어진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유를 항상 초과하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동진,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생각하는 정치」, 『변증법의 낮잠』, 꾸리에, 2014, 195쪽.)
  5)  "'왜?'라는 질문이 서구적 맥락에서는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않는 것처럼, 장애인의 삶의 상태를 개선시키는 기법은 전통적인 송게족(아프리카 자이르 공화국의 한 부족) 사회의 맥락에서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이처럼 '왜?'라는 질문이 중심적이기 때문에, (송게족 내) 한 개인으로서의 장애인에게는 많은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정상적인 생활 내에 평범한 방식으로 통합되어 있다. 특별한 의식(儀式) 없이, 의학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지 않고, 그렇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닌 채로 말이다." (파트리크 데블리허르, 「왜 장애인이 되었나?」,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 앞의 책, 183쪽.)
  6)  위의 글, 191쪽.

 

    유사성 장애의 증상인 "타인의 발화를 횡설수설로 여기거나, 적어도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언어로 간주"(96쪽)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언어 장애 원인과 관련하여, 우리는 우선적으로 시인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탓이라고 추론할 수 있겠다. 요컨대 그는 어떤 상황, 아마도 어떤 미지를 대면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 타인의 발화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횡설수설로서 듣고 있다.

 

    내가 세워지는 곳은 검은 극장 빈 무대
    나는 기다린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말한 것이다 나는 기다린다 내 몸속 자석과 코일 사이 불현 불꽃과 빛으로부터 태어나는 언어 그녀는 단어에 리듬을 부여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내 육체의 전선을 끊는다 그녀의 육성이 날것으로 내 육체를 통과한다 나는 모든 벽을 울리며 사라지는 공기의 파열을 듣는다 나는 말한 것이다 나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기다린다
    조명이 꺼진다

– 「마이크」 전문7)

  7)  송승환, 「마이크」, 『클로로포름』, 문학과지성사, 2011, 14쪽.

 

    이전 시집에 수록된 시편 「마이크」는 같은 제목으로 네 번 반복-변주되는 가운데, 화자는 '마이크'가 되어 "그녀"라는 특별한 어떤 대상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며 이를 반향 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화자가 수용해야 하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날것", 이를 통과시킨 후 다시 되돌아오는 것 역시 "파열"의 목소리다. 시인은 어떤 절대적으로 낯선 대상과 상황에 얽매인 채, 일상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메타언어의 상실"(95쪽)과 더불어, "코드 변환 능력을 상실한 실어증 환자"(96쪽)로서 존재한다. 시인은, 적어도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어떤 충격과 난감함, 어떤 향유와 긴장 속에서 '그녀'에게 오롯이 사로잡힌 채, 오직 "개인방언"(96쪽)에 의지하여 어떤 발화를 수행한다. 그렇다면 왜? 시인은 왜 저 타자의 목소리에 노출되어, 그렇게 손상된 채 존재하는 것인가.

 

    1

 

    눈보라 속에서
    나는 얼음을 깨고 물을 긷는다

 

    흰 들판
    검은 집

 

    나는 두 개의 물통을 지고 걷는다

 

 

    2

 

    길은 희다

 

 

    3

 

    나는 장작에 불을 붙이고 솥을 올린다
    아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의자에 앉힌다

 

    나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아들은 감자 한 알을 먹는다

 

 

    4

 

    말은 병이 들어 누워 있다
    나는 마구간 빗장을 건다

 

 

    5

 

    나는 마구간에서 말을 끌어오고
    침상에서 어머니를 끌어내리고

 

    흙을 판다
    말과 어머니를 묻는다

 

    아들이 둥글게 눈을 뜨고 바라본다

 

 

    6

 

    얼음을 깰 수 없다

 

 

    7

 

    저 언덕 위에 흔들리는 나무가 있다

 

    나는
    썰매에 짐을 싣고 아들을 태운다
    지나간 길은 검다

 

 

    8

 

    나는 나타나지 않고 드러난다

 

    나는 아들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다시 있다.

 

 

    9

 

– 「에스컬레이터」 전문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내가 있다. 나는 병든 말과 더불어 어머니를 땅에 묻고, 얼음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아들과 살아가고자 한다. 그런데 얼음을 깰 수가 없다. 아마도 얼음을 깨 물을 긷고, 아들과 더불어 끼니를 해결해야 할 텐데, 그럴 수가 없다.
    우리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매 맞던 말을 끌어안고 울며, 이내 곧 "어머니, 난 바보였어요."라고 말한 후 정신을 놓았던 니체를 기억한다. 역시나 수수께끼 같은 이 삽화와 더불어 위의 시를 살펴보면, 시의 화자가 니체와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을 확인한다. 즉 니체가 매 맞는 말에 동일시하며 오이디푸스 이전 어머니의 세계로 회귀했다면, 시인은 연민의 대상인 말=나와 더불어 어머니 모두를 땅에 묻고, 미치지 않은 채 이 세계를 살아간다. 초인을 얘기했던 니체보다 더 니체 같은 이런 굳건한 태도는, 그러나 이어지는 시편들에서 회의와 부정의 대상이 되며 어떤 긴장 관계를 이루어낸다.

 

    큰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시계가 있다 // … // 배가 움직인다 / 시체들이 해류를 따라 떠돈다 // … //밤의 대기는 멈춰 있다 // 나는 난바다를 가로질러 나아간다

– 「B101」 부분

 

    배는 밤의 동굴 속에 있다 / 부르튼 시체의 손목이 밤의 바닥에서 떠오른다 / 나는 손목을 잡는다

– 「B102」 부분

 

    손바닥 구멍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고 있다 // 입술은 눈을 뜬 물고기 배 속에 있다 / 찢어진 눈꺼풀을 들여다보는 소녀의 푸른 눈동자가 있다 / 짧고 뭉툭한 손가락을 집는 그리스 어부가 있다 // 바다 정원의 꽃들 사이로 흩어진 내 육체는 빛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 「B103」 부분

 

    시간이 흐르지 않는 비극 가운데, 배는 움직인다. 배는 "밤의 동굴"에 갇혀 있으면서 동시에 그 배는 "빙하의 밤 심해의 쇄빙선"(「검은 돌 흰 돌」)으로, "도끼로//망치로//쐐기로//작살로", "얼음의 밤"을 부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긴장 가운데 마주하는 것은, 시체들, 손목, 손바닥, 입술, 눈꺼풀, 눈동자, 손가락. 우리는 무엇이 저 긴장을 만들어내고 화자를 아연하게 만들었는지 알게 된다. 「에스컬레이터」의 화자가 묻었던 나와 어머니의 시체는 훼손된 채 얼음 아래로 떠오르고, "쇄빙선"의 화자는 그것을 마주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화자는, 우리는, 부술 수 있을까. 부숴야 산다. 부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동일한 것의 부적합한 반복 역시 연상적 작용이 나타나는 한 가지 양식이다. 특이한 것은 다만 연상이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 나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점이다. … 담화는 강박 증세를 보인다. 연상적인 것이 지배적인 시적 담화는 … 많은 경우 어느 정도는 강박적인 성격을 지니게 마련이다.8)

  8)  김태환, 「은유와 환유」, 『문학의 질서』, 문학과지성사, 2007, 130~131쪽.

 

    연상 작용이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선택 축에서, 소위 정상적인 언어생활을 위해 무수한 명제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때, "의식의 배후에서 그 단어를 포함하는 수많은 계열들(을) 일종의 배경음처럼 함께 울리"게 하는 것, 즉 "실현되지 못한 채 잠재적으로만" 존재해야만 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언어의 합리적인 질서를 위협하는 혼돈"9)을 초래하는 작용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환유적 언어 행위는 연상 작용이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최적의 수사이기에, 그간 우리는 송승환의 시 속에서 "탈주권의 언어"(최현식) 및 "의미의 무한을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론자"(조재룡)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저 끝없는 생성의 움직임이 발산하는, 결과물로서 이미지와 리듬을 체감하는 것만큼이나, 그러한 움직임 가운데 화자를 거듭 "제자리"에 묶어 놓는 어떤 '원인'을 질문함으로써, 잠시 그곳에 머물며 함께 생성의 움직임에 동참해 보고 싶은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는 저 알 수 없는 강박의 원인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저마다 상상해 봄으로써, 그간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원인'에 스스로를 연루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흘러내리는 모든 것은 공기 속에서 굳어 간다"(「플라스틱」)는 진술처럼, 지금의 이야기 역시 '굳어질' 이야기, 그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손상과 환유적 글쓰기가 개시하는 유동적인 힘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상의 발구름판이다.

  9)  위의 글, 112~115쪽.

 

    어머니와 관련한 멜라니 클라인의 정신분석은 어머니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궁극적으로는 "사랑과 회복의 충동"10)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는다. 결코 전적인 선도 악도 아닐 그런 어머니에서 출발한 우리의 삶에서, 어머니는 필시 은유적으로 환유적으로 사방에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그 흔적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대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그런 편집적 태도(paranoid position)에서 머물러 있겠다. 그 가운데 우리는 누군가를 향한 부당한 투사를 통해, 나쁜 어머니의 흔적들을 내던지며 스스로를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 속에서 굳어 가게 만들었겠지만, 우리는 한 권의 시집 속에서 우리가 내버렸던 어머니의 흔적들을 모으고, 그것의 목소리를 고통스레 듣고 있는 시인을 만난다. 누구보다 이 세계와 언어를 부정하지만, 동시에 그간 부정해 온 것들을 어떻게든 긍정하고자 하는 긴장적인 언어의 구축 속에서 말이다. 그 과정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다 느껴진다면, 이를 누구보다 안타깝게 반겨 줄 시인과 더불어,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검은 돌 흰 돌」의 마지막 악장을 읽으며, 어떤 용기를 충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0)  제이 그린버드·스테판 미첼, 이재훈 옮김,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이론』, 한국심리치료연구소, 1999, 208쪽.

 

 

    6

 

    도끼로

 

    망치로

 

    쐐기로

 

    무력하게

 

    무용하게

 

    무참하게

 

    무한히

 

    빙하를

 

    백지를

 

    무덤을

 

    바다를

 

    바닥을

 

    나는

 

    마치

 

– 「검은 돌 흰 돌」 부분

 

《문장웹진 2019년 08월호》

 

 양순모

1987년생. 201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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