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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상어가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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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TIKA 2014. 6. 5.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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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 사람이라면

 

베르톨트 브레히트

 

 

"만약 상어가 사람이라면 상어가 작은 물고기들에게 더 잘해줄까요?" 주인집 딸인 꼬마아이가 K씨에게 물었다. "물론이지"라고 그는 대답했다. "상어가 사람이라면, 바닥속 작은 물고기들을 위해 식물은 물론이고 동물까지 포함된 각종 먹이를 집어넣은 거대한 통을 만들어주겠지. 상어들은 그 통의 물이 항상 신선하도록 유지할 것이고 모든 위생 조치를 취하겠지. 가령 조그만 물고기의 지느러미에 상처가 나면, 상어들의 기대와는 달리 너무 일찍 죽지 않도록 즉시 붕대로 싸매주겠지. 물고기들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가끔 커다란 수중 축제가 벌어질 거야. 왜냐하면 우울한 물고기보다는 유쾌한 물고기의 맛이 더 좋거든. 커다란 통 속에는 물론 학교도 있겠지. 이 학교에서 물고기들은 상어의 아가리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법을 배울 거야. 가령 어딘가에서 빈둥거리며 누워 있는 상어를 찾기 위해서는 지리학이 필요하겠지.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은 물고기들의 도덕 교육일 거야.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치는 것이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과, 무엇보다도 상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할 때는 그 말을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배우겠지. 물고기들은 복종하는 법을 배워야 이러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걸 터득하게 될 거야. 물고기들은 모든 저속하고 유물론적이고 이기적이고 맑스적인 경향에 대해 조심해야 하고 그들 가운데 누구라도 그러한 경향을 드러내면 즉시 상어들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배울 거야. 상어가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른 물고기통과 다른 물고기들을 정복하기 위해 서로 전쟁을 하겠지. 그들은 물고기들로 하여금 그 전쟁을 하게 할 거야. 자신의 물고기들에게 다른 상어들이 보호하고 있는 물고기들은 엄청나게 다르다고 가르칠 거야. 물고기들은 알다시피 말이 없지만, 다른 언어로 침묵을 지키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상어들은 발표할 거야. 전쟁에서 적의 물고기들을, 즉 다른 언어로 침묵을 지키는 물고기 몇 마리를 죽이는 물고기에게는 해조류로 만든 작은 훈장을 달아주고 영웅 칭호를 수여할 거야. 상어가 사람이라면, 그들에게도 물론 예술이 존재하겠지. 상어의 이빨이 화려한 색깔로 묘사되고 상어의 아가리가 멋지게 뛰어놀 수 있는 순수한 공원으로 묘사되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있겠지. 바다 밑의 극장에서는 영웅적인 물고기들이 열광적으로 상어 아가리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것을 보여줄 거야. 악대가 앞장서서 연주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꿈꾸듯이, 그리고 가장 행복한 생각에 젖어서 상어 아가리 속으로 몰려 들어가겠지. 상어가 사람이라면 종교도 역시 존재할 거야. 물고기들은 상어의 뱃속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살기 시작할 것이라고 배울 거야. 또한 상어가 사람이라면, 모든 물고기들이 지금처럼 서로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겠지. 그들 가운데 일부는 감투를 쓰게 될 것이고 다른 물고기들의 윗자리에 앉게 되겠지. 그건 상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일일 뿐이지. 왜냐하면 다음에 더 큰 먹이를 더 자주 얻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더 크고 직함을 가진 물고기들은 물고기들 사이의 질서를 돌볼 것이고 물고기통의 교사와 장교, 엔지니어 따위가 될 거야. 요컨대 상어가 사람이라면, 바닷속에는 비로소 문화가 존재하게 될 거야."

 

Bertolt Brecht, <코이너씨에 대한 이야기들>, [즐거운 비판], 서경하 역, 솔,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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