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생환한 프리모 레비의 증언문학 『이것이 인간인가(1958)』(이현경 옮김, 돌베개, 2007) 읽다. 이 정도의 증언과 성찰이 '문학'의 언어이다. 고발과 증오로 가득찬 언어는 개인적 분노의 표출이며 참고할 만한 하나의 증언일 뿐이다. 프리모 레비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힌다.
"내 책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당혹스러운 주제로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진 잔학상에 관해 덧붙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책은 새로운 죄목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정신의 몇몇 측면에 대한 조용한 연구에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이 문장이 바로 폭로를 위한 증언에 그치지 않고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1958)』를 문학의 자리로 자리매김한다. 문학은, 그리고 시는, 폭력적인 세계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 아니라, 그 증언이 미처 말하지 못한 공백과 그 증언의 심층에 놓인 상처와 기억을 상상력을 통해 복원하려는 언어의 실천이다. 즉, 기억하기 위해 망각되고 소실된 사건들을 상상하고 그 상상력을 통해 복원한 언어가 시이며, 문학이다. 만약 시가 증언에만 멈춘다면 그 언어는 시가 아니라 역사가에 의해 수집된 사료일 것이다. 그 증언은 하나의 증언일뿐이며 아우슈비츠와 여타 쇼아(Shoah), ('절멸'이라는 히브리어)에 가까운 제노사이드(Genocide) 사건들 전체가 아니다. 여전히 증언은 계속 채록되고 있으며 지금도, 미래에도 더 많이 구술되고 재구성됨으로써 역사적 사실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시는, 문학은, 그 증언의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상상력에서 발생한다. 그 상상력을 통해 시는 사태 발생의 원인과 잊혀진 사실에 대한 복원과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언제나 내가 없다"(김시종, <광주시편-바래지는 시간 속> 중에서)
아우슈비츠의 사태 현장에, 세월호 사태 현장에, 불행하게도 시는 없다. 시는 없는데, 노래와 구호와 사이렌과 총성이 있다. 그 사태에 없는 시는, 그 고통에 즉각적으로 말할 수 없는 언어는, 온전히 재현할 수 없어서 실패할 수 밖에 언어는, 그리하여 매번 다시, 고쳐서 말해야만 하는 언어는, 나중에 온다. 상상을 통해, 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죽은 자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시인의 펜끝에서 돌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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