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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사유자의 노래-이기성 시집 『동물의 자서전』(문학과지성사, 2020)

비평/도래할 책

by POETIKA 2020. 11. 30. 16:31

본문

 

회색 사유자의 노래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이다.
전태일*
*조영래, 전태일 평전, 아름다운전태일, 2009, 209.
이하 같은 책의 인용은 페이지 표기를 생략한다.

 

 

이기성은 감각을 사유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세계는 희거나 검고 딱딱하게 굳어간다. 그 감각은 도시 일상에 대한 시적 감응을 다른 사물의 감각으로 사유한 것이다. ‘희다검다는 명도(明度)의 차이는 있으나 색상과 채도가 없는 회색과 더불어 무채색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빛이다. ‘희다검다그리고 회색을 모두 품은 사물로는 숯등걸이 있다. 생명을 지녔던 나무가 잘리고 불길 속에 내던져진 뒤 타들어가서 결국 대부분 연기로 사라지고 남은 숯등걸의 빛. 검게 그을렸다가 붉은 숯이 되었다가 잿불만 남은 숯등걸. 그 숯등걸은 희고 검으며 잿빛 회색이다. 초록 생명과 붉은 화염이 소진되고 온몸에 내려앉은 빛이다. 이기성의 시는 도시의 삶을 숯등걸처럼 감각하고 무채색의 빛으로 사유한다. ‘희다검다회색의 빛은 이기성의 시에서 빈번하며 첫 시집 불쑥 내민 손에서부터 출현한다.

첫 시집 불쑥 내민 손에서 지금 마을은 검은 어항처럼 고요”(마을)하고 흰 페인트로 칠해진 광막한 시간이 펄럭”(흰벽 속으로)인다. “어쩌면 어둠 속에서 내가 받아든 것은 잿빛 유골”(몰락)이라는 도시의 삶에 대한 시적 인식. 두 번째 시집 타일의 모든 것에서 나는 칼처럼 분화구에 가득한 흰빛으로 남아”(폭소, p. 50) “이 도시의 잿빛 수로”(어느 날)검은 욕조에 흘러넘치는 어제의 얼굴들(비누)을 바라보는 시적 이미지. 세 번째 시집 채식주의자의 식탁에서 흰 곰팡이 냄새가 피어”(단추의 시, p. 65)오르는 어제의 잿빛 그림자를 질질 끌고”(오늘) “세상이 검고 조용하다”(천호동)는 시적 진술. 네 번째 시집 사라진 재의 아이에서 나는 검고 긴 혀를 빼물고”(개와 여덟 개의 감정, p. 18) “그 애의 목덜미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는”(나비) 것을 본다. “나는 거대한 반죽통 속에서 천천히 잿빛”(잿빛)이 된다는 시적 언술은 모두 희고 검으며 잿빛 회색 세계를 표출한다.** 이것은 도시 일상에 만연한 죽음의 빛을 시각화한 시인의 시적 사유이다.

 

그 애가 회색이 되겠다고 했을 때 모두 웃었다

모두가 웃을 때 그 애는 조금 회색이 되었으려나

 

눈과 코와 동그란 입이 각자의 회색으로 천천히 희미해지고

결국은 회색이 되었을 때 어떤 얼굴에선 조금 눈물이 흘렀으려나

―「회색의 시부분

 

이번 시집 동물의 자서전에서 희고 검으며 잿빛 회색 세계는 심화된다. 모든 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하는 무채색은 더욱 깊고 두텁다. 밀밀한 죽음의 빛이다. “그 애는 강렬한 생명의 빛을 발산하는 유채색이 아니라 무채색의 회색이 되겠다고 말한다. “나는 자라서 재의 아이가 되”(잿빛, )겠다는 그 애의 회색. 그것은 도시의 삶에서 일찍 죽음의 빛을 예감한 자의 선언이다. 다양한 빛의 파장에 따라 고유한 빛을 지니는 삶의 유채색을 포기한 선언이다. 흰색과 검은색의 극명한 빛조차 희망하지 않는 회색의 삶이다. 그 애의 회색이 되겠다는 말에 우리는 모두 웃는다. 그러나 우리의 비웃음은 우리 모두에게 되돌아온다. 누구도 회색의 삶을 희망하지 않았지만 눈과 코와 동그란 입이 각자의 회색으로 천천히 희미해지고/결국 회색이 되었기 때문이다. 회색의 시는 모든 것이 뭉개지고 뒤섞여서 분별할 수 없는 시멘트 회반죽처럼 줄줄 흘러내려서 굳어가는 우리의 삶을 암시한다.

** 불쑥 내민 손(문학과지성사, 2004); 타일의 모든 것(문학과지성사, 2010); 채식주의자의 식탁(문학과지성사, 2015); 사라진 재의 아이(현대문학, 2018).

 

회색 그림자처럼 세계는 고요하구나, 닫힌 창문에서

문득 피어오르는 재의 냄새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회색은 좋아해

공중에 매달린 검은 물건 같지, 그것은

아직도 두 발을 덜렁거리지

 

나는 어떤 회색을, 회색의 입술과 귀를 생각하지

어제 배달된 검은 상자 속의 그것

죽은 시인의 귀처럼

그것은 차갑고

내가 모르는 회색 말들로 가득 차 있지

 

나는 시를 쓰지는 않겠어

폭발하는 회색의 얼굴로 돌아가지 않겠어

―「회색부분

 

동물의 자서전에서 귀신에 가까운 앙상한 노파”(우체국 여자), “밤을 파헤치던 인부들”(밤에 하얀 모래밭에), “어제 가방이 된 동료”(가방), “검은 빙판처럼 쩍 갈라진 밤의 목구멍 속으로”(자정의 버스) 미끄러진 자정의 버스에 탄 승객과 기사. 모두 검은 유리처럼 얼굴에 쩍, 금이 가기 시작”(매혹)한다. 이처럼 매일 죽음의 시가 씌어지는 도시의 닫힌 창문에서” “문득 피어오르는 재의 냄새는 닫고 막아도 지울 수 없는 죽음의 냄새다. 선명한 입술과 귀가 폭발해서 회색이 되는 세계는 고요하다. 고요한 회색의 세계에서 그는 오래전에 죽은 독재자와 마주친 적도 있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권력자였던 독재자도 회색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거기서 회색은 도시에 살고 있는 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죽음의 질서이다. “내가 모르는 회색 말들로 가득 차 있는 도시의 체제까지 함의한다.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회색󰠅도시’, 자본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이유로 회색은 일상적인 죽음의 냄새이며 삶의 빛을 차단하는 죽음의 빛이다.

이기성은 회색을 시각과 후각의 죽음에서 촉각의 죽음으로 확장하는 공감각으로 사유한다. 모든 것이 죽거나 죽어가고 있는 고요한 회색󰠅도시’. 생명의 소리가 소거되어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죽은 시인의 귀처럼 회색을 차가운 사물로 감지한다. 그 촉감은 생명과 인간관계를 모두 사물화하고 딱딱한 사물로 굳게 한다. 자본의 물신성에 대한 이기성의 비판적 사유와 성찰의 감각이다. “누렇게 변색된 얼굴 위로 딱딱한 어둠 덮”(, )이고 사내는 천천히 굳어”(솜사탕 얘기, )간다. “공중에 들어 올린 발은/두 쪽으로 쩍 갈라지며 굳”(2호선, )어가는 도시 일상에 대한 촉감, ‘회색 사유Pensées Grises’는 강화된다. “실내에 가득한 공기가 천천히 굳”(산책)우리는 딱딱한 빵”(우리는 왜 동물처럼 울지 못하는가)을 뜯으며 갑자기 얼굴이 굳어”(그녀)버린다. “여긴 너무 딱딱한 밤”(그녀)이라는 도시의 삶에 대한 회색 사유와 촉각의 알레고리를 전개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시를 쓰지는 않겠다는 결의는 무엇이든 흡수해서 이윤을 산출하고 죽음까지 생산하는 자본의 운동에 수렴되지 않으려는 시인의 저항이다. “시인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회색은 좋아한다는 진술은 도시를 비판하면서도 도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곤궁에 처한 현대적 삶의 아이러니이다.

 

노파의 촛불이 나의 얼굴을 비추었네

네 구두를 주면 노래를 줄게

 

촛불들이 흔들리고 양탄자 속에서 노래를 잃은 새가 울부짖네

누군가의 발이 회색 구두 속으로 쑥 들어오네

 

할머니는 오동나무 관 속에 있지

퍼런 놋쇠 숟가락을 쥐고 있는 그녀는 영원 맨발이라네

―「회색 구두부분

 

죽음의 냄새와 촉감을 사물화한 회색은 맨발의 감각으로 극대화된다. 아이들의 작고 하얀 맨발”(핑크, )맨발로 떠나간 여자들”(목이 긴 이야기, )로 출현한 이기성 시의 맨발은, “그러나 오늘은 맨발로”(멀리, ) 추위를 견디는 회색󰠅도시의 삶을 환기하더니 회색 구두에서 오동나무 관 속에 누운할머니의 영원한 맨발이라는 명징한 이미지로 구현된다. “회색 구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것이다. 구두는 죽은 자의 것이지만 죽은 자는 구두를 벗고 맨발로 관 속에 누워있다. 회색 구두는 망자의 소유물임에도 불구하고 망자가 소유할 수 없는 사물의 징표이다. 할머니의 죽음과 부재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영원한 맨발은 할머니의 부재와 죽음의 실재를 감각할 수 있는 차가운 촉감의 실체이다. 그런데 노파가 네 구두를 주면 노래를 준다고 한다. 구두를 준다면 나는 노래를 얻고 맨발을 드러낼 것이다. 나는 죽어야만 노래할 수 있다. 내가 노래를 부른다면 누군가의 발”, 죽은 자의 맨발이 나의 회색 구두 속으로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죽을 수 없다. 이것은 살아있는 한 노래를 잃은 새처럼 노래할 수 없는 도시에서 산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육체의 유한성에 대한 회색 사유이다. 맨발의 촉각에서 무음(無音)의 청각으로 매개되고 더욱 공감각으로 전이된 회색 사유. 이기성의 회색 사유에 정초된 적막침묵동물의 자서전에서 전면화된 청각의 음역이다.

 

이빨이 몽땅 빠져버린 노파처럼 적막은

적막하구나, 거대한 안개처럼 소리 없이 짖으며 달려오는 그것은……

점점 흐릿해지는 기억 속의 흐릿한 그것은……

―「적막부분

 

시인에게는 아직 많은 밤이 남아 있고 시끄러운 동물들은 어느새 침묵을 배웠습니다. 침묵, 그건 오래전에 잃어버린 기침과 같아요

동물의 얼굴에 눈이 쌓이고 밤새도록 새하얀 동물의 자서전이 씌어집니다.

―「동물의 자서전부분

 

입속에 수북한 눈송이. 하얀 눈 흩어진 벌판에 나는 갇히리. 하얀 사람이 되어가리. 어디선가 노랫소리 들려오면 너는 노래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리.

―「망각부분

 

적막과 침묵은 생명의 탄생과 도약을 위한 정지(定志)가 아니다. 생명의 약동과 일상의 숨결을 정지(停止)시킨다. 기침을 잃어버린 동물의 삶을 가르친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고통의 노래가 소거된 무음의 삶을 강제하는 도시의 음역이다.

적막과 침묵에 대한 회색 사유는 이미지로 집중된다. 김수영의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도시의 끝에/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가/사랑처럼 들리고”(사랑의 변주곡)를 배경으로 동물의 자서전망각을 겹쳐 읽으면 의 이미지는 분명해진다. 이기성은 김수영처럼 도시의 재갈거리는 소리를 사랑한다. 자신의 육체임에도 불구하고 제어할 수 없어서 터져 나오는 기침을 긍정한다. 동물의 자서전망각의 눈은 겨울밤 입속을 틀어막으며 온몸을 하얗게 뒤덮고 얼어붙게 한다. 소리 없이 내리면서 희고 검으며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가는 죽음의 공감각. 회색 사유의 눈 이미지. 눈의 침묵을 배우면서 기침을 잃고 인간이었던 삶의 기억을 잃고 눈 속에서 망각의 동물이 된다. 죽음으로 이끄는 망각의 공감각. 눈송이에 뒤덮이면서 저 죽음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듣는다. 살아있을 때 들을 수 없는 너의 노래.

이기성의 회색 사유는 시각과 후각, 촉각과 청각의 공감각에서 발원한다. 보들레르는 만물조응Correspondances에서 공감각을 통해 단 한 번 육체의 유한성 너머 무한한 것들의 확산l’expansion des choses infinies으로 나아갔지만 시집 악의 꽃은 대도시 파리에서 그의 죽음을 보여준다. 이기성은 생존 연명을 위한 미각을 제외한 공감각을 통해 단 한 번도 그 무한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는 동물의 자서전에서 망각의 동물이 되어가고 육체의 유한성을 절감하면서 대도시 서울에서 죽어가고 있다. 도시의 적막과 침묵 속에서 인간이었던 기억을 망각하는 동물, “회색의 고기”(고기를 원하는가)로서 씹히고 삼켜지면서 죽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절히 모은 손끝에서”(한 사람) 시작된 기도를 하지 않는다. “죽기 전에 기도는 하지 않겠다”(죽기 전에)고 표명한다. 이기성은 기도를 통한 내세로의 이행과 초월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각의 유물론자이며 육체의 유한성을 감각적으로 성찰한다는 점에서 회색 사유자(penseur gris)이다.

이기성은 육체의 죽음과 인간이었던 기억의 죽음을 초래하는 도시의 삶을 회색알레고리로 사유한다. 회색 사유자 이기성은 육체의 유한성뿐만 아니라 도시와 자본이 자행하는 폭력까지 성찰한다. 그는 도시의 첨탑 위에서‘(소년에게) 고공 농성하는 철거민, “농성장에서 팔을 치켜든 아버지”(감자의 시)와 자살 폭탄을 터리는 아들 구둣발로 툭 차”(감자의 시)는 자본의 폭력을 목도한다. 1980년 도청 앞 여기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그림자)며 경악하고 518민주화운동을 상기한다. “도시를 불태울 거”(어쩌면)라며 분노한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의 가장자리가 누렇게”(햇빛) 타버렸고 도시의 폭력과 사람들의 죽음은 적막과 침묵 속에서 잊혀진다. 동물의 자서전은 망각의 동물, 인간이 쓰는 죽음의 자서전이다.

이기성은 삶의 혜안과 아름다움이 결핍된 도시의 일상과 노동이 너무나 지루해서”(구빈원에서의 하루) “하품이 끝나기 전에/어떤 이야기도 시작되지 못”(도착할 때)하는 동물의 자서전에 대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사라진 발을 어루만지면서 산책에 대한 긴 이야기를 시작”(산책자)한다. 그것은 중세의 영웅과 근대의 문제적 개인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고향과 현실로 귀환하면서 성장하는 소설(roman)과 다른 이야기cit’. 그 이야기는 소설의 사건이 아니라 그냥 일어난 사건 자체로서 도시에서 반복되는 이야기.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죽음만 발생하는 이야기. 감각의 유물론자가 망각에 저항하며 도시의 빈곤한 삶을 기억하는 이야기. 김수영이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한다면 이기성은 저 망각의 눈 위에 이야기를 한다. “백 년 동안 검은 전염병이 창궐한 뒤에도 나는 살아”(이야기)남아 이야기을 말하려 한다. 동물의 자서전1부와 2, 4부에 집중 배치된 산문시의 이야기은 표면적으로 적막과 침묵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적막과 침묵에 균열을 내는 이야기들의 소음과 소란이다. 감각의 유물론자는 양질전이의 법칙을 이야기들에 적용한다. 이야기들의 소음과 소란을 통해 죽은 자를 일깨우고 살아남은 자가 망자를 기억하고 애도함으로써 삶의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의 질적 전이를 실현하고자 한다. 3부에 장치된 운문시는 존재의 전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 ‘노래로서의 시와 존재의 근본 물음을 사유한다.

이야기는 이야기되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histoire)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야기에 감화된 사람을 다른 존재로 전이시킨다. 마침내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가 하나의 만남을 이뤄내고 다른 존재로의 전이를 실현하는 이야기’. 그것은 존재의 전이를 이뤄내는 시와 노래이며 사랑과 혁명이다. 지금 의 죽음 너머 다른 와의 만남이다. 1인칭 단수 에서 1인칭 복수 우리로 이행하는 시적 주체의 혁명이다. 희고 검으며 딱딱하게 굳어가는 도시의 삶을 녹여내는 이야기들의 유채색 공동체(共動體), “혁명의 이마”(도서관)를 꿈꾼다. 그 소음과 소란의 재갈거림이 노래처럼 들리는 시. 시인의 말에서처럼 이것은 사랑에 관한 시이며 당신의 말이 되는 시. 그리하여 첫 시 망각으로 시작하여 마지막 시 노래로 끝나는 동물의 자서전은 주제와 시적 형식의 상동성을 지닌다.

이기성은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전이시킨 사람을 기억한다. 이야기를 통해 이전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존재를 만들어낸 시인. 타인을 통하여 타인 안에서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 동시에 현재의 우리와 미지의 존재에게까지 사랑의 시학을 노래하고 삶으로 실행한 시인.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문제임을 스스로 정립한 시인. 평화시장의 재단사 전태일(1948~1970). 이기성은 오랫동안 1970년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쓴다고 시집 뒤표지에 기록한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전태일, 197089일 일기 부분

 

1970년에 그는 재단사였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짓기 위해 목소리를 버렸지요. 누가 검게 그을린 그 목소리를 주워 갔습니까?

그러나 당신은 1970년을 모르고, 그건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겠지만, 노래는 1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닐까요? 화염의 구멍이 별처럼 숭숭 뚫린 외투와 같은 노래는

이기성, 재단사의 노래부분

 

19701113. 22살의 전태일은 도시와 자본의 폭력에 대하여 죽음 말고는 다른 항거의 방법을 찾지 못하여 죽음을 결단한다. 육체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무한한 사랑을 만인들에게 나누고자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다. 세계 어떤 곳 어떤 노동운동사에서도 없었던 유일한 저항의 방법으로 어둠을 밝히는 불꽃이 된다. 문서에 불과한 근로기준법을 불태우면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침과 함께 붉게 타올랐다가 검게 그을렸다가 온몸이 잿빛 회색 숯등걸이 된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짓기 위해 목소리를 버”(재단사의 노래)린다. 그가 일기에 쓴 어떤 문장은 얼음 바다보다 깊”(동물의 자서전).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쓴다. 그는 자신의 문장을 온전히 살아내면서 죽는다. 죽어서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곁으로 되살아 돌아온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존재의 전이를 강력하게 일으키는 시와 노래와 사랑의 불씨가 된다. 전태일이라는 회색 숯등걸의 불씨에서 점화되어 시와 노래와 사랑의 불꽃으로 타올랐던 자기 존재의 전이 경험을 이기성은 회색의 변증법으로 사유한다. 그러나 지금 동물의 자서전을 쓰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전태일을 잊었거나 알지 못한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유언 앞에서 이기성은 묻는다. “맨발로 죽기 전에 우리는 무슨 말을 하게 될까”(도착할 때).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인은 어떤 시를 써야 하는가. “너는 어디에서 왔는지”(검은 식당에서) 묻는다. 시와 존재의 근본 물음을.

 

더러운 신문지를 덮고 누운 노인이 앙상한 손을 뻗어 집어 들고 천천히 읽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것은…… 아마도 사랑에 관한 시일 것이다

―「사랑에 관한 시부분

 

우리는 조금씩 흔들리지만 누구도 풀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

풀이 되지 못해서 조금씩 흔들리지만 풀이 되려고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너의 이름을 알지 못해서 풀이라 부르기로 한다.

―「풀이 되다부분

 

무지와 망각과 무관심 속에서 하얀 종이를 떨어뜨리는”(사랑에 관한 시) 당신에게 시인이 쓰고 싶은 시는 전태일의 사랑에 관한 시이다. “언젠가 어린 시인이 태어나 그의 문장을 낭독할”(시인의 죽음)시이다. 노숙자 노인이 읽어서 다른 존재로의 전이를 경험할 시. 전태일처럼 삶을 시로 쓰지 않는 한 시는, “낫처럼 날카로운 시간에 영원히 찢겨”()질 것이다. 그러나 저 사랑의 시를 통해 다른 존재로의 전이를 경험한 시인은 다시, “검은 종이에 무엇을 쓰려고 연필을 들”(밤의 아이) 수밖에 없다. 전태일의 삶처럼 시를 쓸 수 없고 죽음 앞에서 언어와 육체의 유한성을 체감하면서 흰 종이에 쓰는 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소외된 노동자와 빈곤한 사람들의 공동체(共同體) 안에서 공동체(共動體)를 통하여 공동체와 함께 심려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사람을 기억하고 사람이 되기 위해 흔들리며 이름 없는 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날/소음이 더욱 번성하다 남은 날임을 상기하고 지상의 소음이 번성하는 날은/하늘의 소음도 번쩍”(김수영, 름밤)한다는 것을 예감하는 일이다. 김수영의 연장선에서 이기성의 고유한 연작으로 탄생한 풀이 되다은 잿빛 회색의 육체에서 흔들리고 있는 이름 없는 존재의 불씨를 발견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억하고 심려하는 감정의 불씨에 불을 붙이는 일이다. 이기성의 시는 사람을 기억하고 심려하는 회색 사유자의 노래이다.

 

하나의 감정을 버리고

너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하나의 감정을 더하고

 

밤에는 새들이 와서

몇 개의 감정을 물고 사라졌다

 

베어 문 사과처럼

가장자리가 붉게 썩어가고

신 침이 흐르는 감정

 

밤하늘처럼 조금씩 다가와서

너를 이루었다가 다시 흩어졌다

 

너를 묻고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 되었다

 

너를 위해서

조금의 감정이 필요하고

그것은 풀처럼 조용한 것이다

―「전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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