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6일(월) 152매 분량의 글
<증언의 문학성과 시적 감응의 정치성―아우슈비츠와 5.18 광주에 남은 공백의 언어>을 완성했다. 5월말까지 공저로 출간될 (가제)『감응의 유물론과 예술』에 수록될 글이다.
글이 끝나는 마지막 4장(章)은 중요한 인용문으로 이뤄져있어서 인용한다.
모리스 블랑쇼, 『정치 평론Écrits politiques 1953-1993』(2008), 고재정 옮김, 그린비, 2009. 이 인용의 근거이다.
4. 조각의 문학과 행간의 언어
조각이라는 의도적 선택은 회의에 빠진 후퇴도, 완전한 파악(가능할 수도 있을)에 대한 맥없는 포기도 아니다. 그것은 인내하는―성급한, 이동하는―고정된 추구 방식이며, 동시에 의미와 의미 전체는 우리들과 우리의 글 안에 즉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도래해야 할 미래의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긍정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의미를 캐물을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생성으로서 그리고 질문의 미래로서만 포착한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반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모든 조각의 말, 모든 파편적 성찰은 반복과 무한한 다양성을 요구한다…중략…그러나 우리는 말 혹은 글쓰기를 통하여 ‘세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간접적인 것이야말로 곧바르고 가장 빠른 길이 아닌가를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모리스 블랑쇼, 「베를린」, 『정치평론Écrits politiques 1953-1993』 부분
아무것도 아니
었다 우리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아, 활짝 피어:
아무것도 아닌,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파울 첼란, 「찬미가Psalm」 부분
파울 첼란,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Die Niemandsrose』(1963), 제여매 옮김, 시와현실, 2010, p.25.번역은 수정.
그토록 내가 그대를 꿈꾸었기에
그토록 걷고 그토록 말하고
그토록 그대의 그림자를 사랑했기에
나에게는 더 이상 그대의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림자들 중의 그림자가 되는 것
그림자보다 백배 더 어두운 그림자가 되어
빛 가득한 그대의 삶 속으로
오고 또 오고 할 그런 그림자가 되는 일일 뿐.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1900.7.4.-1945.6.8.), 「무제」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1944년 2월 22일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 아우슈비츠를 거쳐 체코슬로바키아 테레지엔슈타트 수용소에 수감되어 티푸스로 사망. 로베르 데스노스의 유일한 유품인 안경과 함께 수인복 주머니에서 발견된 구겨진 종이 위에 쓴 최후의 시. 이건수, 「로베르 데스노스, 초현실주의 총아」, 『외국문학』44호, 열음사, 1995.8., pp.97-98 재인용.
가혹한 밤들 우리는 꿈꾸었다
치열하고 격렬한 꿈들
온몸과 온 마음으로 꿈꾸었다
돌아가기를, 먹기를, 이야기하기를.
짧고 낮게
새벽의 기상 소리 울릴 때까지
‘브스타바치wstawać'
그러면 가슴속 심장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제 집을 되찾았고
우리 배는 부르고
이야기도 끝마쳤다.
때가 되었다. 조만간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이국의 기상 소리
‘브스타바치wstawać'
1946년 1월 11일
―프리모 레비, 『휴전』(15) 부분
브스타바치wstawać: 폴란드어로 ‘기상’이라는 뜻.
전남북 계엄분소 공고 제4호
제목: 통행금지 연장 실시.
1. 치안유지를 위하여 1980.5.18. 21시를 기해 다음과 같이 통행금지를 연장 실시하니 해당지역 주민은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 통금연장지역: 전라남도 광주시 일원
나. ― 〃 ―기간: 1980.5.18. 21시부터 별명이 있을 때까지
다. 통금시간: 21시부터 익일 04시까지
1980. 5. 18.
전남북 계엄 분소장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한줄도 싣지못
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 5. 20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전남매일신문사장 귀하
―「전남매일신문기자 공동사직서」 전문
이 유인물을 주으신분은 복사하여 주위에 돌리시기바랍니다. 사실보도를 외면한 신문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원자율화에 서명했던 조선대의 교수들은 17일 12시경에 사복 정보원에 의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피를 토하도록 구타당하며 연행당했으나 아직 생사를 알수 없다.
―「조선대학교 민주투쟁위원회」 전단지 부분
지금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참상은 여러분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실들입니다. 지난 18일, 공수특전단들의 세계 역사상 없는 만행이 선량한 시민들을, 지성인들을 미치고 말게 했다는 사실을 인지해 주십시오.
1980년 5월 24일
전남대학교 교수 일동
―「대한민국 모든 지성인에게 고함」 전단지 부분
협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1980년 5월 25일
시민군 일동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전단지 부분
시장과 상가는 개장하였으니 생필품 구매에 이용바랍니다.
1980년 5월 26일
민주화투쟁 대학생 대책본부
―「홍보부―가두방송 원고」 전단지 부분
그러나 광주사태는 완전히 진압된 것도 아니며, 완전히 종결된 것도 아니라고 본다.
1980년 5월 30일
―목격자 이로사리아, 「광주사태 보고」 전단지 부분
다함께 노래합시다.
(정의피 노래에 맞추어)
1. 우리들은 정의파다 좋다 좋다
같이 죽고 같이 산다 좋다 좋다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민주시민으로서의 해야 할 일」 전단지 부분
모두 『5.18 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제2권』, 광주광역시 5.18사료편찬위원회 편, 1997. 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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