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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 노래의 기원

비평/측위의 감각

by POETIKA 2020. 3. 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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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문학과지성사, 2007)

 

 

 

송승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에서 이타카로 귀환하는 10년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돌아가야 할 목적지를 결코 잊지 않았다. 그의 귀환지는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는 가족의 품이었다. 그가 없는 고향 이타카에서 아내 페넬로페는 숱한 구혼자들에게 시달려야 했고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가족의 붕괴 위기를 절감해야 했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으로 가족의 정적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고 가족 서사는 완성된다. 곧 오디세우스의 귀환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 서사의 재정립이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과정에서 만난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로 남자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로 뛰어들도록 충동질한 여성이다. 그녀의 노래로 표명되는 미적 가상(Schein)의 매혹에 이끌린 남성들은 가족에게 이르는 귀환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김이듬의 명랑하라 팜 파탈의 서시 세이렌의 노래에는 미적 가상을 가장하여 가부장적 가족 질서를 향해 찌르는 원한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장차 한 가족을 형성할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 맞추는 키스로 선사할 죽음을 내장하고 있다. 세이렌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와 행복을 위협하는 팜 파탈(Femme Fatale)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파국을 몰고 오는 팜 파탈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김이듬의 세이렌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로부터 소외된 타자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가족을 기다리는존재이다. 오디세우스처럼 자신의 몸은 기둥에 묶고 부하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게 한다면 그 누구도 그녀에게 넘어가지 않기에 그녀는 방치되어 외롭고 우울한 팜 파탈이다. 김이듬의 세이렌의 노래는 오랫동안 가부장적 가족 질서 밖에서 상처받은 존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확인받기를 요청하는 노래인 것이다.

2부에서 두드러지는 그 노래의 화자는, “보육원에 맡겨진 나왼손잡이말총머리 아이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밀수범으로 다시 잡혀갔고 새엄마는 학교에 다녀오니 사라졌다. 좋아하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 그녀의 위독한 엄마는 그녀를 따라나서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그녀의 불우한 가족사는 바싹 마른 태아를 해금으로 연주할까요라는 세이렌의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로 불린다. 말총머리 아이가 쓰러져 있었네/두 어른은 서로 가지라며 언성을 높였네//중략/활은 간당간당 두 현 사이를 춤추고 싶네/활은 앞뒷면을 모두 사용하려 애썼다네//백화점 차고에서 아빠가 내렸네/한 개의 현은 멀어져갔고/멀어지는 것은 끊어지는 것보다 두려웠네/활은 줄을 포옹하고 연주를 계속하려 했네/중략//이번 주말은 엄마의 원룸에서 묵을 것이고/내일모레부턴 공평하게 보육원으로//중략//말총머리 활은/천진하게 등과 배를 비비고 싶었네라는 시구는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Embryons desseches에 맞춰 읊조려진다. 그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두 개의 현은 각각 멀어져간 해금의 활이고 연주할 수 없는 해금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검은 모래 해변에 엎드려 책을 읽(이바지)”고 시를 쓰는 일이었다. “초경 전까지 시를 썼고 피가 나자 시로부터 나로부터 박탈되었고 그 이후로 나는 완전히 미친 것 같(쿠마리)다고 쓴 그녀의 시는, 꿈꾸는 아이였던 그녀가 활과 해금 없이 날 것인 육성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그 노래의 언어는 오디세우스가 귀환하는 이타카에서 불리지 못하고 암초와 여울목이 있는 바다의 절벽에서 불려진다. “나는 어느 바다로 흘러갈까요? 혼자 그곳에 갈까요?(일요일의 사이렌)”라는 삶의 방향 감각 상실로 인한 불안과 복원에의 열망, “여자도 남자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닌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의문, “닿지 않는 건반을 두드리는 환청(레일 없는 기차)”페달을 돌리면서 살짝살짝 음핵을 비벼주는(여드름투성이 안장(鞍裝))” 성적 몽환이 혼종된 언어로 세이렌은 노래한다. 노래는 자신의 제자가 숨기려 하는 누나 정신박약(다운증후군) 소녀(평균율)”에게 자매애를 보인다. 그녀의 자매애는 연대의 손길이며 자기 상처에 대한 연민이다. 연민은 그녀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사랑은 어떤 먼 곳에서 오는 복수()”가 되었지만 세이렌의 노래가 품고 있는 원한의 칼날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의 숨통을 끊기에 무디고 짧다. 원한이 복수의 형태로 실현될 때 그 원한은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다. 복수는 상처의 치유가 아니라 상처를 더욱 덧나게 할 뿐이다. 더욱이 그녀는 복수할 방법도 없다. “일생은 해결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그 무엇 너머……솔직히 잘 모(유령 시인들의 정원을 지나)”른다는 그녀의 고백과, “버림받은 어린 딸이 엄마를 찾아가는 것은 별이 뜨는 이유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시를 쓴다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앞의 시)”라는 시인의 존재론적 물음을 품고 김이듬의 세이렌의 노래,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 노래는 결빙을 풀고 나 너를 안을께(이제 불이 필요하지 않은 시각)”라는 용서의 결구가 완성될 때까지 불릴 것이다. 그러므로 김이듬의 명랑하라 팜 파탈, 외롭고 우울한 세이렌의 자기 주문(呪文)이자 자기 긍정의 첫 발현이다.

명랑하라 팜 파탈
국내도서
저자 : 김이듬
출판 : 문학과지성사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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