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긴스버그의 시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것이 대단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1950년대 미국이라는 시공간의 특수성에서 기원한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시의 확장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이미 유럽에서 도달한 지점이며 지나간 지점이며 미국의 문화가 얕다는 것을 반증한다. 차라리 휘트먼이나 포poe를 한 번 더 읽는 것이 나으리라. 물론 최연홍의 번역(시문학사, 1990)보다 이번 김목인, 김미라 공역(1984, 2017)이 현재 시점의 한국어로서 더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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