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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TIKA 2017. 3. 24.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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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irich Nietzsche의 비극의 탄생』(1872) 청하판으로 읽었었는데, 이번 학기 소포클레스 비극 강의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도서관 강의를 위해 다시 읽다. 


"나는 시선을 그리스의 저 예술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로 돌리고 그들에게서 그 깊은 본질과 최고의 목적에서 두 개의 상이한 예술 세계의 생생하고 분명한 대표들을 인식한다. 아폴론은 내 앞에 개별화의 원칙을 미화하는 수호자로 서 있다. 오로지 그를 통해서만 진정으로 허구 속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반면 디오니소스의 신비한 환호 아래서 개별화의 족쇄는 산산이 부서지고 존재의 어머니들에게, 사물의 가장 내밀한 핵심에 이르는 길은 열린다. 아폴론적 에술로서의 조형 예술과 디오니소스적 예술로서의 음악을 가르는 저 엄청난 대립을 분명하게 본 사람은 위대한 사상가 가운데 유일하게 단 한 사람이다...음악은 다른 예술들과는 달리 현상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의 직접적인 모사이기 때문이다."

비극의 탄생』 16장 중에서


다시 읽으니 글의 구성이 분명히 보이고 니체의 사유가 진행되는 그 기원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원회귀와 운명애의 원천이 아폴론적 앎의 한계 너머에 자리잡은 저 디오니소스에서 연원한 것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미국 여성주의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 레즈비언으로서 소수자의 관점에서 쓰는 시는, 이른바 한국 이성애자 남성으로서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경계 너머에서 시작된다. 좋은 시들이 참 많다. 두터운 볼륨 탓에 천천히 읽었다. 지금, 세월호가 인양되고 있다.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 왔다.

난 손전등에 불을 켜 비춰본다

물고기나 해초보다

더 영원한 어떤 것의

측면을 따라 천천히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 그 자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 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익사자의 얼굴은 언제나 태양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훼손된 증거

소금에 절고 물결에 쓸려 너덜너덜해진 아름다움

참변을 당한 갈비뼈가

멈칫거리며 찾아드는 물고기 사이에서

그 주장을 굽히고 있다.

- 에이드리언 리치의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부분



미셸 푸코의 문학론은 거의 처음으로 번역된 것 아닌가 싶다. 푸코는 모리스 블랑쇼의 '바깥'과 조르주 바타이유의 '위반', 그리고 사드의 '무한과 자연' 개념으로 문학의 경계 너머를 말한다. 무엇보다 3장 '사드'의 문학론이 흥미로웠다. 김현의 시칠리아의 암소』와 김현 편의 『미셸 푸코의 문학 비평』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사드의 글쓰기가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글쓰기인 까닭은 그것이 사드가 자신의 머릿속에 품고 있을 수도 있는 진실, 혹은 사드가 인정하는 진실, 독자와 마찬가지로 저자 자신도 설득되고 마는 진실을 통하여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도를 조금도 갖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드의 글쓰기는 어떤 의미에서든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아무도 설득시킬 수 없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고독한 글쓰기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드에게는 이러한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사드에게는 이 모든 환상이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가 물질성을 부여받고, 글쓰기가 견고함을 부여받는 글쓰기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238)



박상순의 네 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 2017)이 출간된 김에 두 번째 시집부터 다시 읽자는 의도에서 읽다. 소년의 여전한 고독과 상처에 대비되는 자동차와 굴뚝의 폭력적 표상.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초현실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현실의 폭력. 그 반복과 변주를 통한 음악 이미지. 세계는, 자네트가 아픈 날처럼 병든 세계는, 끝나지 않고 지속된다. 첫 시집과 달리 소년의 자기 응시가 나타나고 있다.



황정은의 『百의 그림자』는 국가인권위원회 격월간지 『인권』의 서평을 위해 다시 읽다. 황정은은 보들레르와 랭보 등의 상징주의 시집을 읽고 그 암시의 효과를 터득한 소설가로 보인다. 다시 확인한 것이지만, 한국의 독자들이 좋아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황정은의 소설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장 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를 읽기 위해 다시 읽다. 모리스 블랑쇼가 뒤라스의 소설을 분석하면서 명명한 '연인들의 공동체'는 여전히 주목해서 읽어야 할 장(章)이었다.



번역가 최성웅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만드는 출판사. 읻다.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그들의 책을 연속적으로 읽고 있는 요즘이다. 에드몽 자베스의 『예상 밖의 전복의 서』는 한글 제목으로 좀 어색하다. 원제 Le Petit livre de la subversion hors de soupçon 를 살려서 『예상 밖 전복의 작은 책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몽 자베스의 단행본 첫 번역은 뜻깊다. 말라르메의 대문자 책 Le Livre을 염두한 에드몽 자베스의 의도가 읽혀지면서도 그 나름의 도달한 고유성이 있다. 


"한 권의 거룩한 책이 있는 게 아니라, 거룩한 책의 침묵에 열린 책들이 있는 것이다."(62)

"여전히 말해야 할 사물이 있믕를 믿기. 더는 표현할 것 없을 때에도 믿기. 말이 우리를 삶에 붙든다."(100)



김구용의 장형(長形) 산문시 불협화음의 꽃」(1961) 논문을 쓰기 위해 세 번째 읽다. 불협화음의 꽃」(1961)에 관한 논문만 쓰면 김구용의 산문시에 대한 연구는 4편이 되는 셈이다. 이제 김구용의 산문시에서 작동하는 환영의 방식과 구성 원리에 대해 조금은 더 명확하게 쓸 수 있다. 김구용의 산문시 불협화음의 꽃」는 그의 마지막 산문시이기도 하다. 나에게 김구용 시집 『풍미』는 없다. 『풍미』는 김구용 전집이 절판된 이후 김구용의 첫 시집, 전집의 1권만 재간한 것이다.


"그녀의 피부는 먼 바다 소라 속처럼 고요하였다. 그 나선 계단을 내려가면 무엇이 그녀의 마음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침은 흑요석의 눈에서 때때로 탄생하였다."(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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