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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상』2019년 가을호: 김효은,「언어의 피그말리온, 언제나 당신이 있기를, 끝없이 들끓기를」

리뷰

by POETIKA 2019. 8. 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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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와사상』 가을호 시집 서평

 

언어의 피그말리온, 언제나 당신이 있기를, 끝없이 들끓기를

 

김효은(시인, 문학평론가)

 

송승환,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문학동네, 2019)

 

마침내 당신이 밝혀진다면으로 끝나는 시가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용운의 처럼 어쩌면 당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은 이미 벌써 ()의미 하고, 당신을 규명하거나 이름 부르는 일 또한 ()필요한 일이겠다. 당신은 당신이 있기를 가정하는 주체의 마음에 이미 존재한다. 또한 당신을 발화하는 순간에 당신은 가동되고 현현한다. 당신을 부르는 순간, 당신이라는 기표 안에 혹은 기표 밖에 당신을 가두거나 방목하는 이 다중의 아이러니를 뭐라고 이름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적어도 이른바 이제껏 허투루 이토록 한층 한달음에 함께”(심우장(尋牛莊)) 문학이 하는 일이, 시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이미 있거나 벌써 없는 당신을 끊임없이 노래하고 부르고 찬미하고 때로는 규탄하고 더러는 부수고 추방하고 없애기도 하는 무한반복의 일. 그러나 단 한번도 같을 수 없는 반복의 당신이다. 형체도 없는 그러나 곳곳에 있는 당신에게 우리는 무수한 이름을 붙여주고 다정스레 불러주기까지 한다. 당신의 없는얼굴에 형상을 주고 숨을 불어 넣어주는 그러한 다소 태초의 신()을 닮은, 시인들의 이토록 이상하고 아름다운 일 또는 이토록 희한한 언어의 유희, 존재의 유희와 입김, 언명이야말로 바로 문학의 일이 아니었던가.

지금 여기 이곳에, 언어의 한 그림이, 발신자 없는 서한이, 책의 일부이면서 전부인 시 한 편이 도착하여 부채의 그것인양 날개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독자들은 이제 그 부채를 펼쳐들고 바람을 일으켜 기표와 기의 사이에 어떠한 한 의미의 맥락을 포착하려 한다. 어쩌면 반대로 모든 의미들을 소거시키거나 무화시킬 수도 있겠다. ‘있다없다사이, ‘사이, ‘죽음사이, 오로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접혀 있는무수한 주름들을 간직한 시()의 부채, 어쩌면 언어의 부채()는 존재의 부채(負債)이기도 할, 다수의 부채들의 향연(饗宴). 송승환 시인의 신작 시집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은 태초의 신이 그리하였듯이, 텍스트가 당신에게 역()으로 발화한다. ‘태초에 텍스트가 있었다라고. 텍스트의 향연에 당신은 초대된다. 그러나 초대자인 시인은 정작 손님이 도착하면 재빨리 숨는 존재, 사라지는 존재이다. 언어는 언어 스스로가 이제 향연을 주도한다. 언어는 스스로 말의 집을 짓거나 허물고 세상을 조형해 내거나 파괴하며 빛과 어둠을 조율한다. 시적 주체가 당신을 호명하는 순간, 가정법을 떠나 당신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 있다면이라는 가정 안에 당신은 이미 존재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은 있다면의 이정표를 따라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를 그친다면 당신이 드러난다면 마침내 당신이 밝혀진다면 이름은 부서져서 이름들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적어도 이른바 이제껏 허투루 이토록 한층 한달음에 함께 여름에 겨울에 남으로 북으로 좀처럼 자주 바닥으로 창공으로 바람으로 눈으로 영원히 절대로 가령 깊숙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를테면 솟구치듯 불쑥 마치 오히려 한결같이 완전히 헛되이 가까이 아니면 이윽고 그것뿐인 양 마치 아무것도 어떤 것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송두리째 봐란듯이 숫제 똑같이 아니 여기에 거기에 이미 살며시 밤마다 온전히 언제나 그러나 전혀 어쩌면 예외로 대부분 아마도 그처럼 그토록 텅 텅 그토록 그처럼 아마도 대부분 텅 텅 당신이 걸어나간다면 끝까지 예외로 어쩌면 전혀 그러나 언제나 온전히 밤마다 살며시 이미 거기에 여기에 아니 똑같이 덜하지도 더하지도 어떤 것도 아무것도 마치 그것뿐인 양 이윽고 아니면 가까이 완전히 한결같이 오히려 마치 불쑥 솟구치듯 마침내 당신이 밝혀진다면

 

심우장(尋牛莊)전문

 

위의 시 텍스트는 어떠한가. 꼬리를 입에 문 우로보로스의 그것처럼 혹은 뫼비우스의 띠 혹은 데칼코마니의 두 날개처럼, 문장들과 문장들, 시어와 시어들은 마주 배열되어 있다. 접힌 거울 그 안에서 당신을 찾는 숨은그림찾기. 시인은 당신을 행간 속에 혹은 존재사와 접속사 사이에 숨겨두었다. 양면의 거울을 사이에 두고 겹쳐지는 혹은 마주 비추어진 문장들 사이에 당신이 숨어있다. 다음의 두 구문들을 보라.

a : 솟구치듯 불쑥 마치 오히려 한결같이 완전히 헛되이 가까이 아니면 이윽고 그것뿐인 양 마치 아무것도 어떤 것도 더하지도 덜하지도

b : 덜하지도 더하지도 어떤 것도 아무것도 마치 그것뿐인 양 이윽고 아니면 가까이 완전히 한결같이 오히려 마치 불쑥 솟구치듯

 

시인은 단어의 순서를 거꾸로 배열해 놓았다. 그 다음의 문장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래도 독자가 주목할 부분은 텍스트 사이 사이에 놓여있는 가정형 구문인 듯하다. 이 시집의 1장 제목에 해당하는 만약을 앞세운 뒤에 이어지는 구문들이 전부 그러하다. 이를테면 당신이 걸어나간다면”,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드러난다면”, “당신이 밝혀진다면등등의. 그러나 어쩌면 가정의 구문에서 가정을 나타내는 종속절보다 문장의 후반에 서술될 주절이 훨씬 더 주목을 요한다고 할 수 있다. , 사실 여부가 규명된 바 없는 당신이 있다면의 가정 자체 보다는 당신이 있기를의 진술에 오히려 주체의 명확한 의지와 바람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어는 역순으로 재차 반복된다. 구문은 순서만 바꾸어서 반복된다. 가정을 가정하는 순환 구조 속에서 이름은 부서져서 이름들이 된다”. 그러나 이 문장만큼은 단호하고 명확한 진술의 형식을 지닌다. 단수의 이름이 부서져서 복수의 이름들이 된다는 것은 이름자체가 파편화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 만큼의 독립된 주체의 개체수가 늘어난다는 것일까. 아마도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당신의 이름이 밝혀진다면, 아니 당신이 드러나 우리가 당신에게 오히려 이름을 지어준다면, 당신의 이름은 부서지고 부서져서 다른 여러 이름들로 되살아날 수도 있는 일. 이는 문학의 일이다. 한용운의 ’, ‘()’, ‘당신처럼 말이다. 변화무쌍하고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도 편재하는 존재. 존재와 존재자, 존재성, 존재사에 관한 시. 시편들. 평이한듯 보이지만, 송승환의 시편들의 독해는 결코 만만치 않다. 시의 짜임새를 구축하고 허물고 구축하고 다시 허무는 시인의 솜씨는 능숙하고 현란하고 치밀하고 노련하다. 이제 낯선 기의를 끼워 맞추는 일 혹은 여백에서 의미를 지우거나 찾아내는 일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된다. 시인은 다행히도 무지한 독자를 긍휼히 여겨 제목에서 절반 이상의 힌트를 제시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불교에서 심우(尋牛)란 잃어버린 소를 찾아 가는 과정 즉 불자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에 대한 은유에 해당한다. 심우도(尋牛圖)라는 그림을 보면 그 과정이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잃어버린 소는 또한 만해가 님의 침묵의 군말에서 독자에게 서문으로 밝힌 바 있듯 그리운 것은 전부 이 되는 상실된(혹은 상실 이전의) 대상으로서의 을 뜻하며, 나아가 길을 잃고 헤매는(혹은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세상의 모든 어린 을 전부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제 앞의 텍스트와는 다소 다른, 텍스트들을 보자. 아래의 시에서 아이가 던지는 하나의 물음 앞에 우리는 직면한다. , 이제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검은 돌흰 돌, 빛과 어둠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구별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까지.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질문들이 시집 안에 빼곡하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이 아무리 통상적인 기의를 지워도, 기의를 완벽하게 표백하거나 지울 수 없는 기표가 이번 시집에는 둘이나 존재한다. ‘어머니사월이라는 기표가 바로 그것이다.

 

아이가 묻는다 열쇠는 무엇인가요 침몰한 배의 철문 앞에서

 

(중략)

사월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이미 존재하는 것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

 

끊임없이

 

아무도 아닌 것

아무것도 아닌 것

- 검은 돌 흰 돌부분

 

나는 읽는다

 

어머니가 있다

 

나는 어머니 얼굴을 모른다

 

어머니가 없다

 

나는 읽을 것인가

- 병풍부분

 

독자들이여, ‘병풍뒤의 어머니를 두고 우리가 서술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어머니가” “있다없다중 어느 것이 맞겠는가? 어느 것을 고르겠는가?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사월의 의미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사월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이미 존재하는 것이거나,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중에 당신이 어울리는 기의를, 정의를 고르라. 선택은 역시나 당신의 몫. 송승환의 텍스트는 정답을 내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하고 지우고 다시 제기하는, 파도와도 같은, 그러한 난바다의 무한한 텍스트라 한다면 진부한 찬사일까. 어쨌든 이번 시집에서 보여준 파도와 파랑의 일렁임, 포말들, 무늬들은 독자들과 시단에 새로운 파격과 충격과 파장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김효은, 비익조의 시학(새미, 2019)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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