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A. F. de SADE,『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l 사드 전집 1』, 워크룸프레스, 2014.
사드: 만약 죄를 범하지 않을 자유가 인간에게 있다면, 죄와 교수대를 동시에 바라보면서도 죄를 범하고야 마는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우리는 불가항력적인 어떤 힘에 끌려 다니면서, 단 한순간도 기존의 진행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권한을 갖지 못하네. 자연에 필요하지 않은 미덕은 단 하나도 없거니와, 뒤집어 말하자면, 그 어떤 악덕도 자연에게는 필요한 것이지. 그 두 요소들로 자연이 유지하는 완벽한 균형 상태 속에 자연에 관한 모든 지식이 녹아 있는 거야. 한데 자연이 그 어느 한쪽에 우리를 던져 넣는다 해서 그걸로 우리가 죄인일 수 있을까? 자네 살갗에 날아와 침을 쏘는 말벌에게 죄가 없듯이, 우리도 그럴 리가 없겠지.(34)
사드: 다만, 불행히도 일단 죄를 범했을 땐 얼른 마음을 다잡고, 쓸데없는 후회 따위에 빠져 들지 말아야 한단 예기네. 사실상 죄를 예방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이제 와 죄를 돌이키지도 못하기에, 후회란 허망한 짓에 불과하지. 결국 후회에 빠져든다는 건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거니와, 현세에 죄를 짓고도 벌을 피해 충분히 다행이면서 저세상에 가 뒤늦게 벌 받을까봐 걱정하는 것은 더 더욱 말도 안되는 일이라네. 그렇다고 내가 죄악을 부추기려고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닐세! 할 수만 있으면 당연히 죄악을 멀리해야겠지만, 어디까지나 이성에 의해 그래야 함을 알기 때문이지.
아울러 같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의 기쁨이라는 걸 우리 자신의 마음을 통해 느껴야 하는 것이지. 인간의 윤리는 이 단 한마디 말에 집약되어 있네. “자기가 행복하길 원하는 만큼 남도 행복하게 해주어라.” 나아가 우리가 고통을 원치 않는 만큼 남에게도 고통을 주지 마라. 바로 그것이 우리가 따랐어야 할 유일한 원칙인 셈이지. 그에 공감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건 종교도 신도 아닐세, 오로지 선량한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행복의 즐거움, 특히 이 세상에서 그것을 누리는 일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게. 그것이야말로 삶을 배가하고 확장할 유일한 방법으로 자연이 자네에게 쥐어준 선물이니까……. 친구여, 관능적인 쾌락은 언제나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었다네. 이제 나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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