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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욕망과 미지의 푸가― 함성호 시집 『키르티무카』

비평/전체의 바깥

by POETIKA 2013. 3. 17. 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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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욕망과 미지의 푸가

― 함성호 시집 『키르티무카』

 

 

송승환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함성호의 시는 이렇게 질문해왔다. 그의 네 번째 시집 『키르티무카』(문학과지성사, 2011)는 다시 묻는다.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유한과 무한. 있음과 없음. 함성호는 그 경계를 기하학적 언어로 분석하고 ‘지금-여기’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 너머를 욕망한다. 그는 ‘지금-여기’라는 ‘현대-도시’를 분석하고 그 너머를 욕망하는 까닭에 ‘현대-도시’에서 연원한 언어를 자명하다고 믿지 않으며 그 언어의 원리로 구축된 시를 수용하지 않는다.

인간이 토지측량을 위한 도형 연구에서 기원한 기하학을 바탕으로 ‘현대-도시’의 시공간을 구축했으므로 시인은 현대의 시공간 바깥을 구축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시적 원리로 삼는다. 그는 사물을 재현하는 언어가 아니라 사물을 재현하는 언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재구축함으로써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쓰기를 목표로 삼는다. ‘현대-도시’ 바깥에 대한 욕망과 언어의 한계에 대한 극복 의지는 그의 시적 원리이다. 그는 사물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발산하는 효과를 그려내려는 의도를 지성적 작업으로 수행한다. 그가 수행하는 지적 언어의 극한과 한계는 스스로 부여한 시인의 윤리이며 ‘지금-여기’ 바깥의 시공간과 시적 형식을 탐구하는 시인의 창조 정신을 보여준다.

『키르티무카』에서 그의 지성적 작업은 8개의 독립된 악장과 프롤로그를 포함한 7개의 루바토(Rubato)로 구성된 푸가(Fuga, 遁走曲)로 구현된다. 『키르티무카』는 주제 전개부로 시작해서 주제 전개부로 끝나는 일반적 형식이 아니라 간주부로 시작해서 간주부로 끝나는 전도된 형식의 푸가이다. 푸가의 간주부는 규정된 템포의 틀에서 벗어나 거침없이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데, 함성호는 『키르티무카』의 간주부를 상징적인 짧은 인유와 그 변주의 루바토로 제시함으로써 주제 제시부와 간주부를 전복하고 주제 제시부가 된 루바토에 주제를 담아낸다.

루바토는 1)프롤로그: 고려 국왕의 등가(登歌) 2)수재(水災)와 한재(旱災)에 관한 조선왕조실록 변형 3)새들의 왕 시뮈르그 4)제6대 달라이라마 장양 캄초 5)조선 시대의 부스럼 먹는 유옹(劉邕) 6)상왕(商王) 무을(武乙)과 과대망상의 유학자 왕간(王艮) 7)에필로그: 미주(尾註)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현대의 시공간 바깥의 서사와 신화를 인유하고 변용한 루바토는 ‘어부왕 전설’과 ‘마른 늪에서 누가 저 물고기를 구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연상시킨다. ①국가의 질서체계 확인과 강화를 위해 국왕이 친히 제사지낼 때의 음악 ②나라의 기근과 재난 ③시뮈르그 성의 빈 새장 ④시와 술과 여자에 빠진 달라이라마 ⑤환자의 부스럼까지 먹는 삶의 허기 ⑥광인(狂人) 무을(武乙)과 왕간(王艮) ⑦더 많은 설명이 필요한 미주로 구성된 루바토는 어부왕 전설의 서사에 다름 아니다. 늙고 병든 성불구로 그려지는 어부왕은 죽어야만 부활할 수 있는 상징적 존재로서 그의 신체 결함 조건은 나라와 세계를 황무지로 만든다.

늙고 병든 성불구 어부왕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성배를 찾아 젊은 청년들을 외부로 떠나보내는 것은 자신의 삶을 위해 타자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행위로서 키르티무카(Kirtimukha)의 욕망과 동일하다.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의 키르티무카는 타자의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제외하고 자신의 모든 신체마저 먹어치우는 삶의 허기이며 ‘영원히 닫히지 않는 욕망의 원인’을 가리킨다. 키르티무카는 늙고 병든 성불구 어부왕처럼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삶의 허기에 붙들린 ‘현대-도시’의 욕망을 상징한다. 어부왕의 상처는 성배를 찾기 전까지 치유되지 않고 키르티무카의 허기는 살아있는 한 채워지지 않으며 유옹(劉邕)처럼 살고 있는 현대의 삶은 자본 증식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병들어있다. 모든 생명이 살아있는 한 꿈틀거리는 욕망의 본성과 한계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어부왕의 상처와 키르티무카의 욕망과 현대적 삶의 병듦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 도착한 시뮈르그 성의 새장은 비어 있고 성당에 성배는 없다. 욕망은 비어있는 것이다. 빈 새장과 성배 없는 성당은 또 다른 욕망과 삶의 모험을 부추긴다. 삶의 욕망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생명을 치욕스럽게 연장시킨다. 이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성배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다. 어부왕 자신의 상처 치유 방법은 외부에서 찾을 수 없다. 성배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어부왕이 성배의 ‘없음[無]’ 자체를 깨닫고 육체의 ‘죽음[無]’을 긍정하면서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는 깨달음이다. 그 정신의 나눔을 통한 모든 생명의 육체적 고통의 치유이다. 육체의 죽음과 정신의 재생이라는 깨달음은 어부왕이 자신에게 돌아가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순수한 바보-장양 캄초와 무을과 왕간-시인의 물음에서 기원한다. 성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시인은 루바토의 숨겨진 비의를 전제로 말한다. 현대는 “우리가 스스로를 폐기할 시간”(1.검은 말씀)이며 현대의 시공간 “바깥은 나를 있게”(2 어부림의 청중들) 한다. “문명의 바깥에 자연이 있다면/내 바깥에는 네가 있을 것”(3. 봄밤 강화)이다. “나는 끝까지 감각의 거울에 비친 너를 안고 이 움직일 수 없는 영원의 반대편으로 건너갈 것”(4.감각의 입체)이다. “무한 속에서는 모든 것이/명멸의 빛으로”(5.키르티무카―살아 있어야 하는 것들의 그늘) 숭배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운명의 그늘에 가두어두었”고 우리의 “죽음은 경험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미지”(6.사상(事象)의 지평선)이다. 그 “미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7.사랑,―불가능한). 나는 “바깥에서 사랑을 얻기 위해 노래”(8.얼음 호수 쪽으로)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세계 내부에 전복한 형식의 푸가를 구축하고 노래함으로써 늙고 병든 현대 세계의 불가능한 구원과 신비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함성호 시집 『키르티무카』는 ‘키르티무카-시인’ 스스로 결행하는 단식(斷食)이며 현대의 시공간 바깥을 욕망하는 미지의 푸가이다.

 

 

『문학과사회』 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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